2022년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엇갈린 결과를 받은 배리 본즈(왼쪽)와 커트 실링. /AFPBBNews=뉴스1
메이저리그(MLB) 선수들에게 있어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HOF, 이하 명예의 전당) 헌액은 영예로운 일이다. 그런데 그 투표 기준은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
올해 7월 입성할 선수를 뽑는 명예의 전당 투표는 지난 1일(한국시간) 마감됐다. 매년 투표 결과를 공개한 기자를 토대로 결과를 예측하는 BBHOF 트래커 사이트에 따르면 10일 현재 데이비드 오티즈(83.6%), 배리 본즈(80.8%), 로저 클레멘스(79.5%) 세 선수만이 입성 가능선인 75%를 넘긴 상황이다.
그런데 이 세 선수는 모두 금지약물과 연관된 선수다. 본즈와 클레멘스는 2007년 미첼 리포트에서 약물 구매 사실이 드러났고, 오티즈 역시 2003년 비공개 도핑 테스트에서 적발된 사실이 훗날 밝혀졌다. 이들 모두 '공식' 도핑 테스트에서는 적발된 적은 없지만 심증적으로는 금지약물을 사용한 것으로 의견이 모였다.
자칫 명예의 전당이 만든 명성에 누가 될 수도 있는 결과지만 현지에서는 호의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본즈와 클레멘스는 약물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시점 이전의 성적도 충분히 입성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티즈는 커리어 초기 이후로는 공식적으로 아예 약물과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기에 이들보다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한편으로는 사생활 문제가 드러난 선수들이 적은 득표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올해로 10번의 입성 기회를 모두 사용하게 되는 커트 실링(56)이 대표적이다. 실링은 20시즌 동안 216승 146패 3116탈삼진 평균자책 3.46을 기록했다. 특히 투수 입성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3000탈삼진을 넘기며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그러나 실링은 2008년 현역 은퇴 이후 잇단 설화(舌禍)를 저지르며 자신의 평판을 깎아 먹었다. SNS를 통해 성 소수자와 무슬림을 비난했고, 지난해에는 미국 국회의사당 폭력 사태를 옹호하며 구설에 올랐다. 지난해 71.1%의 득표율을 기록했던 실링은 현재까지 58.2%의 지지만을 얻으며 탈락이 확실시되고 있다.
오마 비스켈이 지난 2014년 클리블랜드 구단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 참석했다. /AFPBBNews=뉴스1
과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현 가디언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수비형 유격수 오마 비스켈(55) 역시 자신이 저지른 사건으로 인해 위기를 맞았다. 현역 시절 11번의 골드글러브를 수상한 비스켈은 타격 성적이 인상적이지 못했음에도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지난 2020년 투표에서는 52.6%의 득표율를 거두며 조금씩 헌액 기준에 접근했다.
하지만 2020년 말 부인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폭로가 터져 나오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본인은 극구 부인했지만 평판은 하락했다. USA투데이의 밥 나이팅게일은 "그는 내 선택에서 제외됐고,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일 거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동안 4~50%에서 머무르던 비스켈의 득표율은 올해 10% 이하로 추락했다. 후보 영구 탈락 기준인 5% 선도 위협받을 수 있는 기록이다.
지금까지 투표 결과를 공개한 기자 중에는 사생활에서 생긴 구설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는 경우가 여럿 나오고 있다. 디 애슬레틱의 칼럼니스트 키스 로 역시 다른 금지약물 의혹 선수와는 달리 한 가수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클레멘스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올해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금지약물 사용 의혹을 받은 선수는 면죄부를 받았지만, 야구 외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선수는 박한 평가를 받은 것이다. 이런 잣대를 통해 입성한 선수들에게 향후 역사는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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