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민 은퇴 "프로 코치 찾아간 초등학생, 15년 했으니 성공했죠"
2021.01.29 21:58:06

[OSEN=지형준 기자] 송광민 /jpnews@osen.co.kr

[OSEN=이상학 기자] 한화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했던 내야수 송광민(38)이 은퇴한다. 

지난해 시즌을 마친 뒤 한화의 보류선수명단에서 제외된 송광민은 현역 연장 의지를 접고 유니폼을 벗기로 결정했다. 한화에서 나온 뒤 개인 훈련을 하며 다른 팀들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코로나19로 얼어붙은 시장에서 기회는 오지 않았다. 

공주고-동국대 출신으로 지난 2006년 고향팀 한화에 입단한 송광민은 지난해까지 1군에서 13시즌 총 1060경기를 뛰었다. 통산 성적은 타율 2할8푼6리 1029안타 111홈런 530타점 489득점. 한화 소속 3루수로는 안타, 타점 모두 강석천(1342안타 542타점)에 이어 2위이고, 홈런은 이범호(160개) 다음이다. 

우여곡절 많은 선수 생활이었다. 2009년 주전 유격수로 1군에서 첫 풀타임 시즌을 소화했지만 2010년 시즌 중 입대 영장을 받으며 3년가량 공백이 있었다. 제대 후 2014년부터 한화의 주전 3루수로 핫코너를 지켰다. 2016~2018년 3년 연속 타율 2할9푼 이상, 두 자릿수 홈런을 터뜨리며 전성기를 보냈다. 

은퇴 후 제2의 인생은 풀뿌리 야구로 돌아간다. 고향인 대전 동구 지역에서 유소년을 중심으로 학생 야구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10년 전 논산에 2만9000평 부지의 야구장 조성 사업에도 힘썼던 송광민은 사비를 들여 유소년 선수들을 위한 훈련장 건립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으로 꿈과 희망을 주고자 한다. 

다음은 송광민과 일문일답. 



[OSEN=대전, 이대선 기자]3회말 2사 3루에서 한화 송광민이 역전타를 치고 있다./sunday@osen.co.kr
 

- 은퇴를 결정하게 된 소감은. 
▲ 크게 잘하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15년간 프로에서 힘이 닿는 데까지 했다. 어릴 때 빙그레 시절부터 보고 자란 고향팀 한화에서 15년을 뛰었으니 성공한 선수 생활이었다고 생각한다. 15년 동안 많은 사랑과 응원을 보내준 팬들과 기회를 주고 키워준 한화 구단에 감사하다. 이제는 팬으로 한화를 계속 응원할 것이다. 

- 개인 훈련으로 현역 연장 의지를 보였었다. 
▲ 한화에서 나온 뒤 개인 훈련으로 몸을 만들며 기회를 기다렸다. 연락은 있었지만 계약 제안은 없었다. 코로나19로 상황도 좋지 않았지만 냉정하게 내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탓이다. 인정해야 한다. 나이가 있는 나를 1년 쓰는 것보다 어린 선수들을 키우는 게 구단 입장에선 맞다. 그동안 열심히 해서 올라왔지만 이제는 내려갈 때가 된 것이다. 

- 선수 생활 동안 기억에 남는 순간, 고마운 사람이 있다면. 
▲ 첫 안타, 첫 홈런을 누구한테 쳤는지 모르겠지만 기억에 남는다. 2018년 가을야구도 잊을 수 없다. 특별히 어느 한 분을 꼽기 어려울 만큼 많은 분들께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기회를 주고 가르쳐준 감독님과 코치님들, 함께한 선후배 동료 선수들에게 감사하다. 덕분에 많은 경험과 좋은 추억을 쌓았다. 지금까지 뒷바라지해준 부모님, 아내, 장모님 등 가족들에도 감사하다. 

- 2010년 시즌 중 군입대로 3년 공백기를 가진 게 아쉽지 않나. 
▲ 나도, 팀도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었다. 이제는 지나간, 오래 전 일이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뒤 38살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2006년 입단 당시만 해도 이렇게 오래 야구할 줄 몰랐는데 동기들 중 가장 오래 뛰었다. 열심히 하다 보니 1000경기, 1000안타, 100홈런 기록도 세웠다. 3할 타율도 3시즌 해봤다. 어려웠던 시간들이 과정이 돼 결과로 나온 것 같다. 

- 은퇴 후 제2의 삶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 선수 생활 내내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적었던 만큼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 아들과 야구장에 가서 추억을 쌓고 싶다(웃음). 선수 생활을 할 때부터 생각한 일이 있다. 유소년 학생 선수들을 위한 야구 관련 사업을 계획하고 있었다. 고향인 대전 동구에서 준비하고 있다. 구청의 도움을 받아 훈련장 부지를 찾고 인허가를 받으려 한다. 다문화 가정, 소외계층 아이들이 마음껏 야구를 할 수 있게 돕고 싶다. 



[OSEN=울산, 최규한 기자] 2018년 올스타전에 참가한 송광민 /dreamer@osen.co.kr
 

- 유소년 야구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가 있다면. 
▲ 나도 어린 시절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힘들게 야구했다. 그래도 인복이 좋아 야구를 계속 할 수 있었다. 주변의 많은 분들이 글러브나 스파이크 같은 장비를 후원하며 밀린 회비도 내주셨다. 많은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야구를 할 수 없었다.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그동안 받은 만큼 이제는 내가 돌려줄 때가 됐다. 

- 어릴 때 특별히 도움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 1990년대 한화가 코치, 선수들을 학교에 순회 코치로 보낸 시절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였는데 지금 LG 2군 감독으로 계신 황병일 타격코치님도 학교에 오셨다. 야구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 학교에서 배운 뒤에도 황병일 코치님 집까지 방망이를 들고 찾아가 ‘스윙 좀 봐주세요’라고 부탁하며 배웠다. 그때 당시 버스를 갈아타는 노선으로 몇 시간이 되는 거리였지만 야구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했다. 나중에 프로 선수가 돼 코치님을 만났을 때 감회가 새로웠다. 코치님이 ‘세월 빠르구나. 네가 성공할 줄 알았다’고 말씀하시더라. 1990년대 한화 2군에서 4번타자였던 장진성 선배님도 순회 코치로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어린 초등학교 시절이지만 그때 기억이 마음 속 끝까지 남을 것 같다. 

- 최근 두 달간 개인 훈련으로 학생 선수들과 함께했다. 
▲ 아마추어 야구의 어려운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학생 선수들은 물론 학부모님들도 어려움이 많으시더라. 무엇보다 아이들이 흥미를 갖고, 튼튼한 몸으로 건강하게 야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키와 덩치는 크지만 힘이 약한 선수들이 많다. 몸이 안 되는데 기술 훈련 위주로 하면 부상이 온다. 기술도 중요하지만 트레이닝과 몸 관리, 치료와 처방도 중요하다. 15년간 프로에서 보고 배운 것들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 사업적으로 시간과 비용이 들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 적잖은 돈이 들어가지만 구청으로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받았다. 인허가 문제를 풀어야 하지만 하나둘씩 해결해가는 재미도 있다. 역시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아이들이 야구에 흥미를 갖고 재미있게 하면서 시기별, 포지션별 필요한 훈련을 세분화하는 프로그램도 공부 중이다. 스포츠 경영, 마케팅 책도 읽고 있다. 대전시 야구소프트볼협회 이사를 맡아 소프트볼의 한 종류인 슬로피치를 보급할 방법도 찾고 있다. 

- 당장 눈에 띄는 성과가 나지 않는 일인데 쉽지 않은 선택이다. 
▲ 큰 일이 아닐지라도 누군가 해야 할 일이다. 4~5년 전부터 생각해오던 일이라 갑작스럽게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쉽게 되는 건 없겠지만 부딪치고 인내해보려 한다. 선수를 은퇴한 만큼 이제는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겠다. 내 고향에서 강백호(KT) 같은 스타 선수가 나오면 얼마나 좋겠나. 그런 날이 꼭 올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다. /waw@osen.co.kr

[OSEN=대전, 민경훈 기자] 한화 송광민이 만루 홈런을 치고 난 뒤 홈을 밟으며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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